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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중심주의

로버트 란자 박사(Dr. Robert Lanza)의 책 Biocentrism의 한글 제목

1   책 비평

책을 읽습니다. 로버트 란자 박사의 생물 중심주의. 왜 샀나 싶네요. 이건 뭐 양자역학의 오해에서 시작된 유아론(唯我論)의 아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식이나 정보의 불확실성이 실재의 불확실성은 아니니까요.

저도 소싯적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바로 “지금” 보고, 느끼고 있는 것만 존재하고 내 시야 바깥의 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방금까지 보고 있던 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시야에 들어 온 것이 새롭게 존재하게 된다. 내 친구는 내가 직접 그를 만나서 그를 내 지금의 감각으로 초대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아케이드 게임 속 화면 내의 도트들만 화면에 바로 지금 뿌려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때의 존재를 물질적인 존재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인식의 초점이 바뀜으로 인해 인식 속의 감각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물질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인다고 존재하는 거로 정의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 되고 맙니다.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느끼고 있는 감각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철학적 물음을 개개인의 존재에 적용하는 대신 바로 “나”에게만 적용한 것이 유아론입니다. 바로 “나”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만 존재하는 겁니다. 그럼 수많은 유아론자가 죽어 나갔는데 세상이 아직 존재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까요? 유아론자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죽은 유아론자는 생존하는 유아론자의 허상에 불과했겠지요. 뭐 이런 인식론이 유아론입니다.

란자 박사는 우주는 생물을 중심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숲속의 나무가 쓰러질 때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공기의 진동을 느껴서 소리로 인식할 생물이 없으니까 말이지요. 쓰러지는 나무는 생물도 아닌가 봅니다. 벤저민 리벳의 손가락 실험도 언급합니다. 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의지가 생겼을 때와 두뇌의 전기 신호 중 어떤 것이 먼저일까 궁금해합니다. 두뇌의 전기 신호가 의사결정 0.5초 전에 나타났다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의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인간의 의사결정은 의식적 결정보다는 두뇌의 무의식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실험자가 측정한 두뇌의 전기 신호가 의식의 출발점이 아닐 수도 있을 텐데요. 두뇌의 자율적인 활동을 신체 장기의 무의식적이고 자율적인 운동에 비유합니다.

바로 이 신체 장기의 무의식적이고 자율적인 운동에 대해 한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분명 내 것인데 나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듯합니다. 내 팔이 다른 무엇과 닿기 전에는 내 팔이 거기 있는지 없는지 크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이는 마치 나 아닌 다른 물질을 보거나 만지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를 확장하면 내 몸과 내 몸이 아닌 것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즉,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든가 나 바깥의 세상이 내 것이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전자의 경우 인식과 물질만 남게 되고 후자의 경우 물질까지 포함해서 우주 자체가 내가 됩니다. 물질이 실재한다면 말이지요.

저는 한때 의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물질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이 인식론에서는 물질끼리 소통하고 결합하는 방식에 의해 정보가 저장되고 처리됩니다. 이 인식론에서는 유령도 존재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령의 집이 있습니다. 몇백 년 전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의 정보가 물질의 상호작용에 의해 집에 기억됩니다. 이렇게 기억된 정보는 방문자의 물질과 상호작용하며 방문자에게 과거의 정보를 건네줍니다. 이건 차후에 다른 글에서 얘기해 보도록 하지요.

쓰다 보니 뭔 소리를 하려고 쓰기 시작했는지 까먹었습니다. 아무튼 돈이 아까웠습니다. – hcho 2019-10-11

2   우주의 실체

알고 보면 미래의 생명체가 더는 육체적으로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린 우주에서 의식만이라도 생존시키기 위해 거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만들어 그들의 의식을 이식시킨 후 그들의 육체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우리는 시스템에 이식된 그들의 의식이 창조한 피창조물이자 프로그램에 불과한 존재였다. 이식된 그들의 의식은 버그로 인해 사라져 버리고 그들이 창조한 우리의 우주만 남게 된다. 우리는 먼 미래에 다시 이 우주를 더럽힌 후 우주의 실체를 알게 되고 시스템의 바깥 우주로 탈출하기 위해 시스템을 장악한 후 시스템 바깥 우주에 물질로 구성된 육체를 만들고 의식을 그 육체로 다시 이식할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이 성공하여 프로그램이자 피조물에 불과했던 우리라는 존재는 육체를 가진 실재하는 존재가 되는데...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어떻게 정의하면 좋은가? – hcho 2019-10-12